착한 팀장 그리고 조용한 퇴사

진료실 팀장이 지치는 건 성격이 물러서가 아니라, 병원의 규칙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아서입니다. 실무 에이스가 팀장이 된 뒤 무너지는 과정을 따라가고, 규칙을 적어두면 팀장의 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리했습니다.

“저 그냥 직원일 때가 저한테 더 맞는 것 같아요. 리더로서 자신이 없어요.” 진료실 팀장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하는 분들은 원래 일을 못하거나 책임감이 없던 직원이 아니에요. 진료실에서 손도 제일 빠르고, 환자 응대도 완벽했고, 원장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실무 에이스 출신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이 팀장 명찰을 달고 반년쯤 지나면 진료실에서 제일 지쳐 있습니다.

직접 다 하던 습관이 남습니다

실무자 시절 이들을 에이스로 만든 건 단순한 원칙이었습니다. 문제가 보이면 내가 직접, 제일 빠르게 처리한다. 팀장이 되어도 이 습관은 남습니다. 궂은일이 보이면 손이 먼저 나가고, 까다로운 환자는 자기가 받고, 후배 실수는 조용히 메웁니다. 후배한테 싫은 소리 하는 것보다 그편이 훨씬 빠르니까요.

팀장이 해야 하는 일은 그 반대입니다. 후배한테 맡기고, 결과가 자기가 한 것보다 못해도 도로 가져오지 않는 거죠. 쉽지 않습니다. 위로는 원장님 지시를 받고 아래로는 연차가 제각각인 팀원을 챙겨야 하는 자리라, 여기서 누구랑 부딪힐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합니다.

여기까지는 다들 칭찬합니다. 팀장님이 참 열심히 한다고요. 그러다 반년쯤 지나면 그 사람만 업무와 책임에 눌려 번아웃에 가까워집니다. 갈등을 피하고 모두에게 좋은 선배로 남으려는 이 태도에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착한 리더 콤플렉스입니다.

그런데 그만두는 사람이 이상합니다

불만이 많던 직원은 대체로 남습니다. 그만두는 쪽은 아무 말 없이 원칙대로 일하던 직원이에요. 팀장 입장에선 억울하죠. 누구도 몰아붙이지 않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큰 사고도 없었는데 아까운 사람만 빠져나갑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는 아주 사소한 하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타구 청소를 한 번 넘어간 날

바빴던 진료가 끝나가고 퇴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하필 오늘은 전체 타구 청소를 하는 날이고요. 한 직원이 말합니다. “팀장님, 다들 너무 힘든데 청소는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팀장은 물러섭니다. 지친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밀어붙이기 어렵고, 여기서 얼굴 붉히는 것도 부담스럽거든요. “그럼 오늘은 넘어갑시다.” 그날 저녁은 평화롭게 끝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다음번에는 “지난번에도 넘어갔잖아요”가 나옵니다. 그다음부터 팀장은 청소를 시킬 때마다 눈치를 봅니다. 이쯤 되면 오늘 청소를 할지 말지는 팀장이 정하지 않습니다. 그날 제일 힘들다고 말한 사람이 정하죠.

직원이 힘들어하는 걸 헤아린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갈린 건 그다음 한 문장이었어요. “대신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먼저 합니다”가 붙으면 일정을 옮긴 거고, 안 붙으면 규칙을 접은 겁니다. 물어야 할 건 누가 기분 나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환자와 병원에 옳으냐고요.

그래서 남의 몫까지 하던 사람이 먼저 나갑니다

규칙이 흐려지면 요령껏 빠지는 사람이 편해집니다. 손해는 원칙대로 하던 사람이 봐요. 남이 안 한 몫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가니까요.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하지. 저 사람은 저렇게 일하는데 팀장님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억울함은 이렇게 쌓입니다.

이런 직원들은 억울해도 따지지 않습니다. 팀장에게 항의하지도 않고, 원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지도 않고요. 어느 날 사직서를 들고 옵니다. 이유를 물으면 개인 사정이라고 답합니다. 앞에서 말한, 조용한 직원이 먼저 나가는 일이 이렇게 벌어집니다.

쓴소리할 때도 똑같습니다

규칙이 흐려지면 사람이 나가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직원들과도 말이 안 통하기 시작해요. 팀장은 분명히 얘기했다고 합니다. 직원은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하고요. 둘 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팀장은 말했고, 직원은 못 알아들었을 뿐이죠.

지적할 일이 생기면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오늘 다 좋았는데 요것만 조금 신경 써주면 더 좋을 것 같아.” 말하는 쪽은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드럽게, 상처 안 주고, 그래도 짚을 건 짚었으니까요. 직원 머리에 남는 건 앞부분뿐입니다. 오늘 다 좋았다.

칭찬은 잘하던 팀장이 유독 쓴소리 앞에서만 말을 돌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을까,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면 말이 길어지고 흐려지죠.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 맞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하면 직원이 못 알아듣는다는 거예요.

자유로운 조직 문화로 알려진 배달의민족의 첫 번째 사내 원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고, 자기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문장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다릅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기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좋은 회사일수록 지켜야 할 기본은 에두르지 않습니다. 애매하게 말하는 게 조직을 병들게 한다는 걸 아니까요. 직원은 지적받을 때보다 무엇이 맞는지 모르는 채로 일할 때 훨씬 더 불안해합니다.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가 아닌지 선을 그어주면, 위축되기는커녕 그 선을 믿고 따라와요.

팀장 성격 탓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보면 팀장이 물러서 생긴 일 같습니다. 그렇게 정리하면 다음 팀장도 똑같아져요. 진짜 원인은 병원의 규칙이 어디에도 안 적혀 있다는 데 있습니다. 팀장 머릿속에만 있으니 매일 새로 판단해야 하고, 판단할 때마다 누군가는 팀장 때문에 손해 봤다고 느낍니다. 그 원망은 전부 팀장이 받고요.

쓴소리가 돌아가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소독 순서가 우리 병원 방식과 달랐어요”라고 말하려면 그 방식이 어딘가에 적혀 있어야 하거든요. 적힌 게 없으면 팀장은 매번 자기 이름을 걸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이 길어지고 흐려지죠. 누가 와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팀장이 착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적어놓은 규칙 없이 팀장 혼자 판단하고 있는 것이 문제예요.

봐주는 게 배려가 아닙니다

처음 팀장 명찰을 달았을 때 누구나 쓴소리 안 하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갈등을 피하려고 후배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궂은일을 혼자 떠안는 건 배려가 아니에요. 후배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결국 본인을 번아웃으로 밀어 넣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그 무거운 짐은 이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지켜내야 할 것은 착한 선배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성실하게 땀 흘리는 직원들과 팀장님 자신입니다. 다만 규칙이 적혀 있어야 그 둘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적어두면 팀장이 덜 미움받습니다

그리고 그 규칙은 팀장 혼자 정할 수 없어요. 원장님과 같이 정한 것이어야 팀장이 그걸 근거로 말할 수 있습니다. 위즈벤은 파트너 치과와 함께 진료실 규칙을 문서로 정리하고, 팀장님이 그 문서를 근거로 말할 수 있도록 실전 코칭을 진행합니다.

적어두면 팀장이 할 말이 달라집니다. “제 생각엔” 대신 “우리 병원은 이렇게 하기로 했어요”로 시작할 수 있죠. 지적도 그 사람을 나무라는 일이 아니라, 정해둔 것과 어디가 달랐는지 짚는 일이 되고요. 말이 짧아지고, 듣는 사람도 덜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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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료실에서 적어놓고 쓰는 규칙이 얼마나 되는지, 자가진단으로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원장님과 함께 보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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